산방산에서 이호테우 노을까지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다시 펼쳤다. 그 자리에 제주 1박 2일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 2022년 3월 10일과 11일, 가족과 함께 다녀온 이틀치 사진 스물세 장. 그날 입었던 외투의 두께. 산방산 절벽에 부딪히던 바람 소리. 이호테우 노을이 바다에 길게 깔리던 마지막 순간.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그게 다 따라 올라왔다. 결국 글로 남기기로 했다. 봄이 시작되던 무렵의 제주를, 그날의 시간 순서대로 다시 걸어본다.

날짜만 보면 한겨울에서 막 빠져나온 시점. "이 시기에 제주가 괜찮을까" 싶었다. 막상 도착하니 남부 해안가는 이미 봄이었다. 유채꽃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점심에 먹은 국수도 미지근한 봄볕에 어울리는 메뉴였다. 길게 다녀오는 휴가가 아닌 짧은 가족 여행. 그래도 1박 2일 안에 산방산 자락의 정적과 이호테우 노을 마지막 빛까지 다 담겼다.

1일차 — 제주 1박 2일 첫날, 산방산 자락의 봄

산방산과 산방사 — 도착하자마자 바로 발 닿은 자리

공항에서 차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산방산이었다. 짐은 숙소에 풀지 않았다. 트렁크에 그대로 둔 채 출발해서 12시 즈음 산방산 근처에 닿았다. 차는 길가 한쪽에 세워두고 산방사 입구까지는 잠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멀리 솟은 산방산이 처음 한눈에 들어왔다. 글 맨 위의 표지 사진이 바로 그 길에서 담긴 컷이다. 산방산은 화산 폭발로 솟은 거대한 바위 한 덩어리다. 멀리서 보면 거의 인공물처럼 깔끔하게 솟아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절벽 표면의 결이 거칠게 살아난다.

도로 끝쯤에서 산방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위 옆구리에 자리 잡은 산방사는 절 자체가 크지는 않다. 그래도 뒷벽으로 절벽이 그대로 받쳐 줘서 사진이 어디서 찍어도 풍경이 받쳐 준다.

산방사 풍경 — 절벽이 절 뒤편을 그대로 받치고 있어 어디서 찍어도 그림이 된다
산방사 풍경 — 절벽이 절 뒤편을 그대로 받치고 있어 어디서 찍어도 그림이 된다

산방사 경내 — 작은 규모지만 산방산의 깎아지른 절벽이 배경을 채워 준다
산방사 경내 — 작은 규모지만 산방산의 깎아지른 절벽이 배경을 채워 준다

산방산은 정상까지 등반하지는 않았다. 가족 여행이라 무리할 일도 아니었다. 절 주변과 입구 일대만 한 시간 가까이 머물며 풍경을 봤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용머리해안 입구와 늦은 점심 — 국수명가에서 한숨 돌리기

산방사에서 차로 5분도 안 걸려 닿는 곳이 용머리해안이다. 용머리해안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검은 응회암 절벽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이름 그대로 용이 머리를 바다에 박고 있는 모양이라고들 한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한번 들여다본 시각이 13시 17분 즈음.

용머리해안 입구 풍경 — 검은 응회암 절벽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모습
용머리해안 입구 풍경 — 검은 응회암 절벽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모습

다만 이때 다들 배가 고파서 본격적인 산책 전에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차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국수명가로 향했다. 평일이었는데도 자리가 꽤 차 있어서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는 가게 간판 메뉴인 성게국수로 정했다.

성게국수 — 맑은 국물 위에 올라간 성게가 봄 제주의 첫 끼니로 잘 어울렸다
성게국수 — 맑은 국물 위에 올라간 성게가 봄 제주의 첫 끼니로 잘 어울렸다

국물이 진하다기보다는 얇고 맑다. 그릇 가까이 가져가면 바닷내가 확 올라온다. 처음 먹어보는 조합인데도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봄볕에 어울리는 메뉴라는 게 한 입 만에 와닿았다. 가족 모두의 픽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른 시각이 14시 30분 즈음. 점심 사이에 한 시간 가까이 쉰 셈. 오후 일정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산방산 유채꽃밭 — 봄볕에 노란 한 칸

식사를 마치고 차로 다시 5분쯤 달려 닿은 곳이 산방산 유채꽃밭이었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가 한 칸 가득 펼쳐진 자리. 3월 초였는데도 이미 만개해 있어서, 노란 색이 시야 한쪽을 다 채웠다. 제주 남부는 본토보다 봄이 빨리 온다는 걸 그날 처음 체감했다.

산방산 유채꽃밭 입구 — 노란 유채가 한 칸 가득 펼쳐진 자리
산방산 유채꽃밭 입구 — 노란 유채가 한 칸 가득 펼쳐진 자리

들판을 한 바퀴 돌았다. 옆으로 난 작은 언덕 길을 따라 잠깐 위로 올라가 봤다. 한 발만 올라가도 시야가 확 트인다. 한쪽엔 바다, 다른 쪽엔 노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 산방산 자락 옆 작은 언덕에서 시야가 트이는 자리
산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 산방산 자락 옆 작은 언덕에서 시야가 트이는 자리

유채꽃밭 전경 — 같은 높이에서 반대쪽으로 돌아 내려다본 노란 들판
유채꽃밭 전경 — 같은 높이에서 반대쪽으로 돌아 내려다본 노란 들판

다시 들판으로 내려와 사진을 좀 더 찍었다. 노란 배경 위로 다들 옷이 살아나서 평소보다 사진이 잘 나왔다.

산방산 자락 바닷가 — 첫째 날 마무리

유채꽃밭에서 차를 빼서 바다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산방산 자락의 해안이 나온다. 산방산은 바다와 가까운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한쪽 발은 들판, 다른 한쪽 발은 바다. 그 동선이 이 코스의 묘미다. 첫째 날 마지막 자리는 그 바닷가에서 매듭지었다.

산방산 자락 바닷가 — 들판에서 차로 잠깐 내려가면 만나는 바다
산방산 자락 바닷가 — 들판에서 차로 잠깐 내려가면 만나는 바다

3월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햇볕은 따뜻했다. 가족 모두 차에서 내려 잠시 바다를 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째 날 일정의 마지막 빛을 그 자리에서 보냈다.

바다와 봄볕 — 제주 1박 2일 첫째 날의 마지막 빛
바다와 봄볕 — 제주 1박 2일 첫째 날의 마지막 빛

산방산 자락 도착이 12시 즈음. 바닷가에서 차에 다시 오른 시각이 15시 25분. 그 사이 약 세 시간 반. 산방산·산방사·용머리해안·국수명가·유채꽃밭·바닷가까지 여섯 자리를 돌았다. 동선이 반경 5km 안에 다 모여 있다. 차로 짧게 끊어 다닐 수 있다는 게 이 코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2일차 — 제주 1박 2일 둘째 날, 한라수목원과 이호테우

한라수목원 — 봄을 머금은 산책길

둘째 날은 일찍 움직이지 않고 점심을 천천히 먹은 뒤 오후에 출발했다. 한라수목원에 도착한 시각이 15시 45분 즈음. 제주시 외곽에 있는 수목원이라 1박 2일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기에 적당했다.

한라수목원 입구 — 제주 1박 2일 둘째 날의 첫 자리
한라수목원 입구 — 제주 1박 2일 둘째 날의 첫 자리

한라수목원 산책로 — 봄볕이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빛
한라수목원 산책로 — 봄볕이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빛

수목원은 입장료가 따로 없다. 산책길이 잘 정비돼 있어서 가족 단위로 천천히 걷기에 좋다. 늦은 오후 빛이 가지 사이로 길게 들어오는 시간대였다. 그 빛 때문에 평범한 산책길이 사진이 되는 자리가 자꾸 생겼다.

한라수목원 산책 풍경 — 가족과 천천히 걷기 좋은 길
한라수목원 산책 풍경 — 가족과 천천히 걷기 좋은 길

수목원 안쪽 — 늦은 오후 빛이 길게 들어오는 시간
수목원 안쪽 — 늦은 오후 빛이 길게 들어오는 시간

한 시간 좀 안 되게 머물렀다. 길게 도는 코스도 있었다. 이날은 다음 일정인 이호테우 노을을 보러 가야 해서 짧게 끊었다. 수목원에서 이호테우까지는 차로 20분 거리. 16시 10분쯤 일어나면 시간이 딱 맞았다.

이호테우 노을 — 목마등대 너머로 깔리는 빛

이호테우 해변은 제주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 입구에 두 마리의 목마등대가 서 있다. 일출·일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늘 모이는 자리다. 1박 2일 마지막을 이호테우 노을 한 컷으로 매듭짓는다. 이날의 단순한 계획이었다.

이호테우에 닿은 시각이 17시 30분이 채 안 됐을 즈음. 해변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입구 쪽 한적한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마주친 게 이 나무 한 그루였다.

이호테우 입구 근처 나무 한 그루 — 노을을 기다리던 시각, 빛이 가지 사이로 떨어지던 자리
이호테우 입구 근처 나무 한 그루 — 노을을 기다리던 시각, 빛이 가지 사이로 떨어지던 자리

조금 더 걸어서 모래사장으로 내려간 시각이 17시 32분 즈음. 노을까지는 30분 정도 여유.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그래도 모래 위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잡혔다.

이호테우 모래사장 — 노을 직전, 빛이 살짝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호테우 모래사장 — 노을 직전, 빛이 살짝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해변에서 바라본 목마등대 — 흰색 한 마리, 빨간색 한 마리가 짝지어 서 있다
해변에서 바라본 목마등대 — 흰색 한 마리, 빨간색 한 마리가 짝지어 서 있다

이호테우 풍경 —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 오후라 한적했다
이호테우 풍경 —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 오후라 한적했다

17시 40분이 지나면서 빛이 빠르게 바뀌었다. 하늘이 분홍에서 주황으로 변했다. 다시 진한 붉은빛으로 5분 단위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부터는 셔터를 자주 누르게 된다.

이호테우 노을의 시작 — 빛이 분홍에서 주황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호테우 노을의 시작 — 빛이 분홍에서 주황으로 넘어가는 순간

목마등대와 이호테우 노을 — 가장 인상적이었던 컷 중 하나
목마등대와 이호테우 노을 — 가장 인상적이었던 컷 중 하나

18시쯤 이호테우 노을이 절정을 지났다. 빛이 바다 한가운데에 길게 깔렸다. 이호테우는 서향이라 일몰 풍경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목마등대 두 기가 노을을 가로지른다. 실루엣으로 잡히는 그 구도가 이 자리의 시그니처다.

이호테우 노을 절정 — 바다 한가운데 깔린 빛이 길게 뻗는다
이호테우 노을 절정 — 바다 한가운데 깔린 빛이 길게 뻗는다

이호테우 노을의 마지막 빛 — 18시 13분, 거의 다 떨어진 시점
이호테우 노을의 마지막 빛 — 18시 13분, 거의 다 떨어진 시점

18시 13분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이호테우 노을이 거의 다 떨어진 시점. 카메라를 거두고 차로 돌아왔다. 제주 1박 2일의 끝이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매듭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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